구례소개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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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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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현내면(縣內面) 동내, 서내, 남내, 북내, 북외, 백련, 주암, 회동, 사동, 시동, 아양 등 11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계사면(界寺面)의 독자, 유곡, 변기, 논곡, 본황, 봉서, 교촌, 산정, 신촌, 월암, 원천, 점촌, 내방 등 13개 마을과 광의면 천변리(川邊里) 일부와 곡성군 고달면 탑선동 일부를 편입하여 1914년 4월 1일에 조선총독부령으로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구례면으로 고쳐서 봉동, 봉서, 봉북, 봉남, 원방, 신월, 계산, 논곡 등 10개리로 개편하였고 1963년 1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위치

남쪽으로 섬진강 너머에 있는 문척면, 동쪽으로 마산면, 북쪽으로 용방면과 닿았고 서쪽으로 곡성군 고달면 두가리, 서남쪽으로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비촌리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구례 지역의 문화 교통, 교육의 중심지이며 지리산의 지맥인 산성봉(山城峰-438m)과 논곡리 천왕봉(695m) 줄기가 뻗은 산기슭에 백련골, 수각골, 독자골, 유곡골이 있고 봉성산이 진산이다.

사동(寺洞)마을 - 산성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30 37 67 27 146 131 15 46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1685년(조선 숙종 11년)경에 금녕김씨(金寧金氏)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 되었다. 당초에는 도롱골(도롱곡(道弄谷)이라고 칭하였으나 신라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백련사(白蓮寺)를 창건하여 고려말기에 폐사(廢寺)된 후 조선시대에 마을이 이뤄지면서 “절골”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처음에 현내면(縣內面) 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이 된 후 산성리(山城里) 사동(寺洞)으로 개편되었다.

자생조직
  • 위친계 - 1963년 조직.
  • 부녀계 - 1968년 조직.
  • 친목계 - 1979년 조직되었으나 1980년대 초 이후 이주민과 출향인의 급증에 따라 유명무실해지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유적
김무규가옥
산성리 566번지에 위치하며 1917년 건립, 故 김무규의 조부 때부터 시작하여 김무규의 부친이 완성한 가옥. 이 가옥을 지은 목수는 구례사람인‘문익수’이며 목재는 인근 산과 곡성에서 벌목하여 조달했다고 한다.
효자 김영준지려(孝子 金英俊之閭)
금녕 김씨 충의공 백촌(忠毅公白村)의 후손으로 자는 여찬(余贊)이다. 조선 공종 29년(1892년) 통훈대부사헌부(通訓大夫司憲府) 감찰(監察)벼슬과 효자문(孝子門)을 받아 건립하였다.
전진사 김공영국(前進士金英國) 시혜비
절골 들머리에 위치하며 김공의 후덕한 진휼을 기리고자 1922년 4월에 세웠다.
민속놀이
  • 1977년대 초반까지는 정월대보름에 농악놀이 등을 행했다. 조직되었으나 1980년대 초 이후 이주민과 출향인의 급증에 따라 유명무실해지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타
주막
1960년대 현재의 김진성의 가옥 입구에 주막이 있었으며 2년간 유지되었다. 현재는 없어졌다.
방앗간
현재 김진성의 가옥 아래채(외양간으로 사용 중)에 해방 전부터 10마력짜리 원동기가 설치돼 1965년경까지 운영되어 오다 폐업되었다(당시 공장장 김길수, 김진호 작고). 현재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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