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소개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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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면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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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화엄사에 딸려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던 토지처(土旨處)였는데 조선 시대에 토지면이 되었으며 구만, 단산, 신단산, 월곡, 중산, 하죽, 상죽, 내죽, 도산, 파도, 오미동, 환동, 중대, 불당, 율치, 장요, 용두, 금동, 원내, 음안, 오평, 봉소, 내계, 송정, 외계, 외동, 중추, 직전, 수평, 당치, 평도, 죽리, 원기, 신촌, 남산 등 35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마산면 하사리(下沙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산, 파도, 오미, 문수, 용두, 금내, 송정, 외곡, 내서, 내동 등 10개리로 통폐합하였다. 동쪽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남쪽으로 간전면과 문척면, 서쪽으로 마산면, 북쪽으로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닿았다.

위치

동쪽으로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서쪽으로 마산면과 북쪽으로 전북 남원시와 산동면과 접경하였고 남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간전면과 문척면과 접경하였다. 동북방으로 지리산을 등지고 서쪽으로 섬진강 연안에 330㎞의 넓은 평야가 있다.

구만마을 - 구산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126 113 239 92 32.3 1.06 -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삼한 시대 마한 고랍국의 중심지로 치소(治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개성 왕씨가 개척하였다. 김해 김씨, 전주 이씨가 산세와 수세가 좋다하여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토지 중앙 경로당 앞에 보존되어 있는 입석(立石)과 고인돌을 근거한 자료에 의하면 삼한 시대의 부족 국가의 터전과 들판, 논에서는 기와 조각과 지그릇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점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로 볼 수 있으며 구만 호가 살았다하여 구만이라 하고 아홉 물굽이가 모인 곳이라 하여 구만(九灣)이라 했다. 아홉 물굽이는 덕은천, 한수천, 칠의내, 머리내, 배우내, 서시내, 옥이내, 반내, 동구내 이다. 그런데 문척면 화정(花亭)이 우리말로 ‘꽃징이’이다 이 꽃짓이가 강쪽으로 육지가 돌출된 부분을 뜻하고 반대편 구산리쪽으로 섬진강이 굽어드는 곳이므로 구만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구만은 ‘구미+안’의 준말이다. 회관 마당에 있는 소나무의 수령을 약 300여 년 이상으로 추정한 것으로 보아도 오래된 마을임엔 근거가 있으면 중앙 경로당 앞 감옥이 있었는데 죄인을 가두는 옥으로 보아 삼한 시대부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 3권 구례현 고적 항에 ‘토지처(土旨處)는 구례현의 동쪽 10리에 있다.’고 했다. 중앙경로당 앞에 옥터는 토지처에서 죄인을 가두던 감옥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에 토지처가 있던 마을이다.

자생조직
  • 위친계 - 회장 이희철 외 55명이 25,000,000원의 기금으로 부모상(喪) 때 상부상조 한다.
  • 구의계 - 회장 권봉운, 구만 마을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1996년 발족, 청년계원들로 구성 되었다.
문화유적
선돌
구산리 170. 토지 중앙 경로당 앞. 삼한 시대나 삼국 시대의 마을 경게 표시로 추정 길이 2m, 넓이 1m.
지석묘
구산리 170. 토지 중앙 경로당 앞. 입석이 세워진 우측에 자리
보호수
구만 유상가 앞. 괴목나무 5그루
송림
구만 유상각 앞. 소나무 숲 70여주
조탑
토지 중앙 경로당. 운조루 문화 유씨 소유, 운조루의 남쪽이 허하야 새는 재물을 막고자 싼 돌탑. 희귀한 유적으로 문화적 가치가 높다.
비석
토지 중앙 경로당. 우송 성낙용 명인을 기리는 토지시우회에서 건립한 비.
삼하교(三河橋)
토지 중앙 경로당 뒤뜰. 옛날 덕은천은 하죽에서 중앙 경로당 앞으로 흘렀는데, 그때 경로당 앞에 세워진 다리의 표지석, 언젠가의 홍수로 덕은천의 유향이 바뀌었다 한다.
민속놀이
  • 1970년대까지 정월이면 농악으로 지신밟기와 달집 태우기로 풍년 농사와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였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기타
  • 구만 마을에 정미소는 처음 발동기로 돌려 운영했다. 미영을 타고 쌀과 보리쌀을 찧었다. 미영을 타는 작업을 하면서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였던 현영민의 조모가 사고사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김성수가 운영하면서 전기로 작업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정연태가 지금의 문수제로 수몰된 장작소 부근에 타빙을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했다. 토지면 평야지 5개 마을에 유선방성라디오를 운영하여 인기가 좋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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