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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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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광의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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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방광면의 지상, 지하, 천변, 광석, 대촌, 유산, 견곡, 월곡, 수한, 당촌, 훈포, 용전, 용내, 둔전 등 14개 마을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의 소의면(所義面)의 상촌, 하촌, 연파정, 공북, 온동, 당동, 난동, 구만, 방광 등 9개 마을에 용강면(龍江面)의 사우, 본신 마을의 각 일부를 편입하여 방광면과 소의면의 이름을 결합해서 광의면이라 개칭하고 연파, 지천, 대산, 수월, 방광, 대전, 온당, 구만 등 8개 리를 관장한다. 동쪽으로 마산면, 서쪽으로 용방면, 남쪽으로 마산면과 용방면, 북쪽으로 산동면에 닿았다.

위치

동쪽은 마산면과 서쪽은 용방면과 구례읍과 서시천을 경계로 닿았고 북쪽은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다. 천은사 계곡에 흐르는 소아천(小兒川) 유역 지역이다.

난동(蘭洞)마을 - 온당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58 64 122 49 1,482.65 40.5 12 1,430 0.15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마을 뒤 동편에 있는 난야사(蘭若寺-현 건물은 근년에 지음)는 고려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근래(1915년경) 거란(契丹) 연호(年號)가 새겨진 종(種)이 발굴되었으나 일본인들이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또한 난야사(蘭若寺)가 고찰(古刹)이지만 이와 함께 설촌 되었다고 단정 할 수는 없으나 사찰이 있었으니 본 마을의 설촌 시기도 고려말이나 조선 초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마을 근처에 난초가 많이 있다하여 난곡(蘭谷)이라고 마을명이 붙혀져 있고 그래서 “난초골”이 “난죽골”로 변해 불려졌다. 근세에 와서 남원부 소의방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원부 소의방과 구례현 방광방 이 합하여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 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생조직
  • 위친계 - 마을의 애경사 때 합심하는 조직.
  • 기 타 - 부녀회, 남녀 노인회.
문화유적
난약사(蘭若寺)
원래는 난야사임, 마을 동북편에 위치하며 고려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임란 때 소실되었다. 당시 종과 인경(쇠북)등을 왜놈들이 가져 갔다고 한다. 그 터만 남아 있었으나 1989년 충청도 출실ㄴ의 여승 주지 “전임희”가 난약사를 소규모(3간)로 다시 복원하고 본면 방광리 출신인 원주보살과 함께 불도를 드리다가 1992년 전임희 주지는 다시 충청도로 가고 원주보살도 산동면 둔사리 「문이」란 곳의 삼정암(三精庵)을 창건 이주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온 승려가 지키고 있다.
석불(石佛)
난약사 경내, 조성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조에 난야사 창건시로 추측되나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된 뒤 방치되어오다 사찰이 복원된 후 석불보호시설을 하여 풍우를 막아 주고 있다.
전통한옥
601번지, 함주굴 박노안의 가옥으로 전통한옥으로 약 50여 년이 되었다.
보호수
회관 앞, 느티나무로 약 100년이 되었다. 높이가 20m, 둘레 2.5m이다.
보호수
여성회관 앞, 약 200년 된 느티나무는 높이가 18m, 둘레가 3.4m로 면지정 보호수로 지정 받았다.
보호수
280번지(당산), 약 300년 된 고송(古松)으로 근방에 보기어려운 거수(巨樹)로 음력 섣달 그믐 오시에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의 보호수이다.
탑(造塔)
809-30번지, 마을 어귀에 위치하며 기록은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고려말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방편으로 주민이 출역(出役)하여 돌을 모아 쌓은 탑이다’라고 한다.
민속놀이
  •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앞 입구에서 달집 태우기와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농악놀이도 곁들여 마을의 단합과 친목을 다진다.
기타
마을 주막
본 마을 809-9번지에 주막이 있었으나 1968년 온난제 저수지를 시설하는 공사에 종사하는 인부를 식사를 겸한 주막으로 이장을 역임하기도 한 김병표가 운영하다가 공사가 끝나고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주막이 없어지고 주인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10일간씩 돌려 가면서 막걸리를 받아 이동식 주막을 운영하고 있다.
정미소
마을 605, 296, 579-2번지(회관앞자리)에서 세 갈래로 된 귀목나무인 디딜방아를 운영해 오다가 근대화되면서 발동기를 이용 방아를 운영 했다. 지금은 일반 매상제도로 정미소는 폐쇄되고 그 터는 농경지로 되고 말았다(전설 :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디딜방아 찢는 방앗대를 마을 입구에 세워 두면 병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속설로 시행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물레방앗간
590-1 번지에 함주굴 또랑의 물을 이용하여 김병표가 설치하였는데 수원(水源)이 일정치 않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다리
함주굴 또랑을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다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박노완의 집 문전에 길이 5m, 폭이 5m 규모의 다리를 놓아 본 마을과 함주골간의 교통이 원활하였고 온동방면으로 가는 다리 역시 같은 시기에 가설 됐으나 1989년 온당-구만선 도로 확포장 공사에 완고하게 교량이 되어 모든 불편이 해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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