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소개

마을유래

  • 인쇄하기

광의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광의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광의면 홈페이지 바로가기

연혁

방광면의 지상, 지하, 천변, 광석, 대촌, 유산, 견곡, 월곡, 수한, 당촌, 훈포, 용전, 용내, 둔전 등 14개 마을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의 소의면(所義面)의 상촌, 하촌, 연파정, 공북, 온동, 당동, 난동, 구만, 방광 등 9개 마을에 용강면(龍江面)의 사우, 본신 마을의 각 일부를 편입하여 방광면과 소의면의 이름을 결합해서 광의면이라 개칭하고 연파, 지천, 대산, 수월, 방광, 대전, 온당, 구만 등 8개 리를 관장한다. 동쪽으로 마산면, 서쪽으로 용방면, 남쪽으로 마산면과 용방면, 북쪽으로 산동면에 닿았다.

위치

동쪽은 마산면과 서쪽은 용방면과 구례읍과 서시천을 경계로 닿았고 북쪽은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다. 천은사 계곡에 흐르는 소아천(小兒川) 유역 지역이다.

상대(上大)마을 - 대전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38 42 80 42 62.5 56.1 6.4 9.7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설촌 연대는 세종 초엽(1460년경)에 경주 정씨와 김해 김씨의 입촌으로 여겨진다. 그 동안 주민의 셰계(世系)는 경주 정씨 13호, 김해 김씨 9호, 밀양 박씨 5호, 진주 강씨 4호, 전주 이씨 7호 등이 주류로 류(柳), 장(張), 임(林)씨 등이 거주하고 있다. 1460년경 설촌 당시는 구석물(각우촌, 角隅村)이라고 하다가 남원부에 환속되던 연산군 5년(1499)에는 남원부 소의면 상촌(上村)이라 하였다. 그 후 일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전리의 위뜸이라고 하여 상대로 개칭하게 되었다.

전설
  • 마을의 최장수자 유금례의 며느리 이동순은 20세에 남편을 여의고 시어머니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므로 장수하였다고 하며 면에서 2차에 걸쳐 열녀 및 효부상을 받았다고 한다.
  • 마을의 쇠락 - 거주호수가 갑자기 절반으로 감소되고 장수자도 급격히 줄어든 것은 입수청용(入首靑龍)인 소쿠리 등을 농로개설을 위하여 허물은 탓으로 복구해야 한다는 설을 믿고 이 마을의 과제로 안고 있다.
  • 조선조 1500년경에 주봉(冑峰, 투구봉) 밑 서당골에서 서당이 있어 주민들이 한학(漢學)에 힘쓴 나머지 문명의 개화기에 신학문인 학교공부를 거부하여 왔기에 극히 보수적이다는 설이 있다.
자생조직
  • 위친계 - 마을 전쳬가 위친계원화하여 애경사시 항시 상부상조한다.
  • 기 타 - 부인회, 남녀 노인회.
문화유적
보호수
마을당산, 수령 300년, 높이 30m, 둘레 3.5m.
민속놀이
  • 마을 앞 천변(泉隱川)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마을의 안녕을 위한 달집 태우기를 하며 농악놀이로 지신밟기를 해오고 있다.
기타
마을의 주막
회관 앞 마을 구판장이 예부터 주막의 역할을 하였다.
정미소
김종철의 집 앞에 발동기 정미소가 있었으나 회관 앞으로 옮겨 이강호가 1980년대까지 운영해 오다가 정부매상제도시행에 따라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광의면 총무팀
전화:
061-780-2961

현재 페이지를 모바일에서 확인을 하실 수 있습니다.구례군청 구례소개 > 마을유래 > 광의면 페이지를 모바일에서 확인을 할수있는 QR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