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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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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광의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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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방광면의 지상, 지하, 천변, 광석, 대촌, 유산, 견곡, 월곡, 수한, 당촌, 훈포, 용전, 용내, 둔전 등 14개 마을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의 소의면(所義面)의 상촌, 하촌, 연파정, 공북, 온동, 당동, 난동, 구만, 방광 등 9개 마을에 용강면(龍江面)의 사우, 본신 마을의 각 일부를 편입하여 방광면과 소의면의 이름을 결합해서 광의면이라 개칭하고 연파, 지천, 대산, 수월, 방광, 대전, 온당, 구만 등 8개 리를 관장한다. 동쪽으로 마산면, 서쪽으로 용방면, 남쪽으로 마산면과 용방면, 북쪽으로 산동면에 닿았다.

위치

동쪽은 마산면과 서쪽은 용방면과 구례읍과 서시천을 경계로 닿았고 북쪽은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다. 천은사 계곡에 흐르는 소아천(小兒川) 유역 지역이다.

연파(연파)마을 - 연파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107 115 222 115 0.5 49 8 15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백제 때 구차례현에 속하고 신라 경덕왕이 구례현으로 개칭 곡성군과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는 남원부 소의방에 속하였다. 1414년 조선조 제 7대 세조 때에 순천진에 속하였는데 1592년 선조 25년에는 남원진에 속하였다가 1708년 숙종 34년에 운봉진에 속하였다가 1895년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다시 남원부에 속했다가 일제하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례현 방광방과 남원의 소의방을 합병하여 광의면으로 칭하고 본 마을은 그 면소재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앞 서시천이 해(亥)방에서 입수하여 금색유수(金色流水)하여 미(未)방으로 관류하고 물흐름의 파도가 연기처럼 일러서 파토반용(波土盤龍)의 파(波)자를 부텨 연파리(煙波里)라 하였고 또는 마을이 금수대(錦繡帶)와 같고 연화도수(蓮花倒水)와도 같은 서시천이 흘러 그 첫 자인 연(蓮)자와 파토반용의 파(波)자를 따서 연파정(蓮波亭)으로 칭하였으나 연(蓮)자가 연(煙)자로 변경되어 현재 쓰고 있다는 설이 있다.

자생조직
  • 부녀회, 남자노인회, 여자노인회.
문화유적
전통가옥
439, 348번지, 고 김준규 후손이 거주.
보호수(입합나무)
마을 당산, 수령 500여 년 된 희귀한 노거수인 입합나무는 1982년 도지정나무로 지정받았으며 높이가 약 10m, 둘레는 약 3m로 수형의 기묘함과 더불어 입하절(立夏節)을 기하여 푸른 신록의 사이에 백설화(白雪花)가 어울어지고 강한 꽃향기를 내뿜으며 분분히 꽃잎이 날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창의정(蒼義亭)
마을 당산, 본 마을 당산은 풍수설에 의하면 빼어난 명당으로 지리산맥이 서시천을 향하여 뼏쳐 기맥(氣脈)이 해룡(海龍 12절을 따라 좌청룡이 결정에 이루는 지점에 기암양석(奇巖壤石) 사이사이에 그 연륜을 헤아릴수 없는 노거수(느티나무) 5 그루가 서있고 근래에 심은 4 그루의 젊은 나무가 사이에 서 있다. 의리(義理)는 영원히 창성(蒼盛)해 가기를 기원하는 뜻으 창의정을 1985년에 정부지원과 자부담으로 건립하였다.
민속놀이
달집태우기
마을 앞 서시천(광용교밑)에서 정월 대보름이면 달집 태우기와 농악 놀이가 펼쳐진다.
기타
주막
현재의 천말봉의 집, 윤광섭의 집, 광성문구점자리, 박귀봉의 집터 등에 식당을 겸한 주막이 있었으나 지금은 식당관 슈퍼, 문구점 등으로 변했다. 5.16혁명 이후로 연파리시장 주변에 4!5개소의 주막이 유지되어 오다가 면사무소 이전 신축으로 철거 정비되었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사건
1933년 8월에 큰비가 내려 마을 앞 제방이 없는 상태에서 급류에 휩쓸려 사망 실종 되었고, 가옥들이 파손되어 저지대 거주자들은 타지로 이사해 버리 수가 많았던 대홍수 피해 사건이 있었다.
뒷등 물갈림 사건
1890년경 광의초등학교 뒷등에는 연파리와 용방면 신지리의 접경지로 매년 여름철에 홍수가 나면 그 많은 물이 연파리로 집중적으로 흘러 예부터 물갈림이 끊이지 안아 이로 인해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이의 해결을 위하여 남원부사 권직상이 왔는데 마침 그 때 호우가 쏟아져 홍수 피해가 심한 것을 목격하고 신지리 관할 지방관인 구례현감을 오게 하여 양 마을이 공평하게 분수(分水)되도록 물갈림 문턱을 설치하여 오랜 분쟁을 해결시키게 되었다. 남원부사가 돌아가는 길에 천은사를 관광하며 기념으로 젓들 용소에 큰 벽암(碧巖)에 각명(刻名)까지 하여 뜻이 전해오다가 1970년대 말 천은제 축조때에 매몰 되었다.
호열자(虎列刺) 사건
1920년에 일제는 호열자병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이 병으로 사망한자는 우리 고유의 전통장례를 치루지 못하게 하고 화장을 강요하고 마을간의 교통을 차단하며 이로 인하여 당장 생활의 위협을 받게 되니 가족 친지를 잃은 슬픔에다 망자(亡者)에 대한 예우까지 못하게 하여 일제에 대한 증오감이 가중하여 마침내 그 울분을 풀길이 없어 집단폭동으로 버지고 말았다. 당시 면소재지 일원의 주민(강성묵, 김광진 중동)이 집결 면사무소와 주재소(현 파출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부수고 왜경(倭警) 1명을 타살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주동자는 모두 검거 투옥되었으며 경향 각지 지상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이로 인하여 삼남(三南) 일대에 연파정(연파리)이 유명하게 알려 졌었다.
일제의 강제 동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그 전선이 동남아 일대로 확대되자 일본은 우리 조선에 국가 총 동원령을 내려 젊은 청․장년을 강제로 징병 징용하여 전선에 투입하여 그 희생은 막대하였다.
방앗간
본 마을의 방앗간은 처음 설치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설촌과 거의 동시에 있었으리라고 보며 그 변천과정을 보며 처음에 디딜방아로부터 수력을 이용한 몽둥방아에서 물레방아 그리고 전력모터 정미기로 사용했으며 최근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어 주민들의 편익을 도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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