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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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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광의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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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방광면의 지상, 지하, 천변, 광석, 대촌, 유산, 견곡, 월곡, 수한, 당촌, 훈포, 용전, 용내, 둔전 등 14개 마을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의 소의면(所義面)의 상촌, 하촌, 연파정, 공북, 온동, 당동, 난동, 구만, 방광 등 9개 마을에 용강면(龍江面)의 사우, 본신 마을의 각 일부를 편입하여 방광면과 소의면의 이름을 결합해서 광의면이라 개칭하고 연파, 지천, 대산, 수월, 방광, 대전, 온당, 구만 등 8개 리를 관장한다. 동쪽으로 마산면, 서쪽으로 용방면, 남쪽으로 마산면과 용방면, 북쪽으로 산동면에 닿았다.

위치

동쪽은 마산면과 서쪽은 용방면과 구례읍과 서시천을 경계로 닿았고 북쪽은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다. 천은사 계곡에 흐르는 소아천(小兒川) 유역 지역이다.

유산(乳山)마을 - 대산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57 74 131 55 82 35 15 13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마을 설촌 형성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지금부터 300년 전인 1700년 경 현 사직골(당촌)에서 살고 있다가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전염병을 피하여 현 위치인 유산 마을로 남원 양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 앞에 위치한 선바위(바위를 쪼아서 만듦)와 마을 앞 돌무덤(1985년 경지정리 때 파묻였음)과 대산리 고인돌 등 광의면 대산리 모랭이 마을(유산마을) 유적지에서 수습된 옹관, 석촉, 석검, 병부편 등이 마을 주변에서 수습되고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을의 설촌 시기는 이보다 몇 백년은 앞선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 기록인 여지도서(與地圖書, 1759)나 호구총수(戶口總數, 1787) 기록에도 방광면에 유산이 속해 있음을 보여줄 때 그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마을에는 양씨 성은 사망 또는 마을을 떠난 지가 오랜된 실정이다. 마을의 형사이 적먹이 어린이가 어머니 품속에서 젖을 먹은 형상이라 하여 젖 유(乳)자와 모 산(山)자가 합해서 유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젖뫼라고 부르기도 한다.대산리 속한 것은 주변의 대촌 마을과 젖뫼의 글자 중 대(垈)자와 산(山)자가 합해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산리로 칭하게 되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자생조직
  • 위친계 - 1956년 조직된 마을 위친계는 당초에 1,2계로 나누어 조직 마을내 애경사 때 상부상조하여 왔으나 농촌 인구감소와 이농에 따라 1990년에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도 유사제도를 두고 운영되고 있다. 조직인원은 40가구에 이른다.
  • 상록계 -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현실이었으나 지금도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면서 마을을 지키고 생업에 종사한 마을 내 젊은 청년층이 1994년 조직 운영되고 있다. 친목단체로 현 11가구 22명으로 구성 운영되고 있다.
  • 유산새마을부녀회 - 1970년 새마을 운동과 연계 구성된 마을 부녀회는 마을내 각종 애경사시 솔선수범 하여 상부상조하는 친목단체로 35명의 회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화유적
보호수
유산정 부근, 전라남도 지정 보호수인 상수리 2그루가 있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 20~20m, 둘레(3.5~2.0m로 지금 매년 열매를 맺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주민들의 쉼터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고가(古家)
김병규집, 목조 토기와 건물로 옛건물 형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처마 밑의 부연 지붕의 용마루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민속놀이
회전놀이
농경사회의 농업은 두fp 형식으로 서로 도우면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으1945며, 매년 본격적인 농번기 시작 이전인 4월말에서 5월초의 기간 중 하루 날을 정하여 마을 전체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즐겁게 지내는 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달집태우기
마을 설촌 시기부터 내려오는 달집 태우기 풍습은 유산 마을을 대표 할 수 있는 민속놀이로 요즘은 마을 노인회에서 주관이 되어 달집을 마을 앞 논에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정월 대보름 동쪽 하늘 달뜨는 시간에 맞추어 달집을 태우고 있으며, 이 날은 마을 농악놀이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달집을 태우고 난 뒤에는 유산정 주변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농악풍물거리를 실시하여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그 해 새로 지은 집을 찾아가서 마당밟이와 집터를 울려주는 풍습도 있다.
8.15 광복절놀이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름철 바쁜 농사에도 불구하고 모두 일손을 놓고 마을 유산정에서 음식을 준비하여 해방의 뜻을 기리며 마을 윷놀이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기타
주막터
구례 나들이를 지나 산동 남원 길모퉁이에(현 모랭이 임병선의 구 집터) 주막터가 있었다.
연자방아
대산리 46-4번지 황우연의 집터자리에 정연창 선친 소유의 연자방아터가 있다.
정미소
유산 마을 최초 정미소는 김용한의 부친인 김창호가 대산리 21번지(현 서두엽 거주)에 발동기로 보리타맥을 시작했으며, 이후 박상래가 산동 신학에서 이사와 대산리 75-10번지에 정미소를 짓고 운영하였다. 또한 소유자는 여러 번 교체되었다.(김종현-이이영-조기연-정성섭-정태호-이이영-1999년 노후로 철거)
기와막터
유산~월곡 중간지점에 기와를 굽던 기와막터 자리가 있었으나 1960년경 폐쇄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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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61-780-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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