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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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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방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용방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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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구례군 용천(龍川) 또는 용강면(龍江面)의 사신, 두동, 당동, 봉덕, 죽림, 사우, 지동, 본신, 용정 신룡, 탄동 등 11개 마을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 중방방의 감동, 송정, 신기, 도암, 가동, 죽동, 분토동, 강정의 8 마을과 외산면(外山面)의 우와 마을 일부를 편입하여 용강과 중방의 두 면의 이름을 결합하여 구례군 용방면이라 개칭하여 사림, 신도, 신지, 용강, 용정, 죽정 중방 7개 리를 관할한다.

위치

구례군청에서 남원시로 가는 국도 서편 6km지점인 용방명 용정리에 면사무소를 가지고 서쪽으로는 곡성군과 고달면과 남쪽으로는 구례읍 산성리 동쪽으로는 광의면 연파리 북쪽으로는 산동면 이평리를 접하고 있으며, 광활하고 기름진 전답의 옥토와 인심좋고 살기좋은 고장을 자랑한다.

두동(豆洞)마을 - 용강리 -

기본현황

(2014. 6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53 62 115 33 79 23 8 33 15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앞 도로변에 10여 호가 살았다고 하며, 1,500년경에 세종대왕 제 4 왕자 임영대군의 증손 운양도정공 낙남지(落南地)를 국풍(國風-나라에서 유명앟 풍수)에게 마을 뒤 준령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사패지(賜牌地) 75정보 가운데에서 집터를 잡게 했는데 그가 용강리 665번지(현재 종각)에 집터를 잡았다. 그래서 현재까지 18대나 대대로 살고 있다. 배출 인물은 정유재란 때 석주관에서 왜적을 무찌른 이정익(李廷翼)이 있다. 그가 석주관 칠의사 가운데 한 분이다. 당초에는 마을 자리에 못(池)이 있었다하여 두지동(豆池洞)이라 칭하다가 두동(豆洞)으로 개칭하였으나 1914년 해정구역 개편 때 용강으로 개칭하였다. 그런데 1914년까지 용강은 면이름 이었다. 그리고 1789년 호구총수에 용천면(龍川面)이라 하였다.

자생조직
  • 종친계 - 전주이씨 종친계로 35명으로 이루어져 있음.
  • 친목계 - 여자 20명으로서 매월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함.
문화유적
영모재(永慕齋)
마을 뒤에 있다. 1878(공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4칸 한옥으로 전주이씨 제각이다.
상모재(常慕齋)
마을 입구에 있다. 전주이씨 이준호 상산문화재단 대소간의종각이다.
민속놀이
  • 정월 보름날 오후에 봉덕 마을과 합동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달집을 태운다.
기타
  • 정미소 - 마을 앞에 있다.
  • 우물 - 200년 된 마을 공동우물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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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용방면 총무팀
전화:
061-780-2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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