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소개

마을유래

  • 인쇄하기

용방면 마을유래

최신 정비된 마을유래는 "용방면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용방면 홈페이지 바로가기

연혁

구례군 용천(龍川) 또는 용강면(龍江面)의 사신, 두동, 당동, 봉덕, 죽림, 사우, 지동, 본신, 용정 신룡, 탄동 등 11개 마을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원부 중방방의 감동, 송정, 신기, 도암, 가동, 죽동, 분토동, 강정의 8 마을과 외산면(外山面)의 우와 마을 일부를 편입하여 용강과 중방의 두 면의 이름을 결합하여 구례군 용방면이라 개칭하여 사림, 신도, 신지, 용강, 용정, 죽정 중방 7개 리를 관할한다.

위치

구례군청에서 남원시로 가는 국도 서편 6km지점인 용방명 용정리에 면사무소를 가지고 서쪽으로는 곡성군과 고달면과 남쪽으로는 구례읍 산성리 동쪽으로는 광의면 연파리 북쪽으로는 산동면 이평리를 접하고 있으며, 광활하고 기름진 전답의 옥토와 인심좋고 살기좋은 고장을 자랑한다.

죽정(竹亭)마을 - 죽정리 -

기본현황

(2014. 6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89 81 170 57 431 66 19 321 25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지금부터 약 1286년경에 흥덕(興德) 장호성(張浩成)이 마을 뒷산에 암자를 짓고 불도를 닦기 위해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죽동 마을은 우리말 이름이 ‘대절골’, ‘대죽골’, ‘원죽(元竹)’이다. 절이 있어서 대절골이라 하였고, 대절골을 한자로 죽사동(竹寺洞)이라 쓴다. 마을 뒷산 암자 부근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어서‘대죽골’이라 부르고 맨 처음에 마을이 있었다는 뜻에서 원죽 마을이라 불렀다.

전설
  • 옛날에 놋점골에 거머리가 많았는데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목이 말라 물을 먹다가 거머리가 많이 있어서 이 거머리를 옆 마을 분토골로 던져 버렸다. 그 후로는 놋점골에 거머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자생조직
  • 위친계 - 1956년에 25명이 모여 상부상조의 뜻으로 조직.
  • 그릇계 - 1970년 부녀자 35명이 조성, 마을 행사 시 상호친목.
문화유적
솟대
마을 입구, 조선조 중엽 때 조성, 밑둘레 10m, 위둘레 3m, 높이 4m.
사리부도
마을 뒤, 조선조 중기 때, 높이 15㎝, 둘레 210㎝.
보호수
마을 옆 , 수령 200년, 육송 300년.
민속놀이
  • 음력 정월 보름날 달집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한다.
기타
정미소
마을 중간 냇가에 물레방아간이 있었으나 1940년경에 없어지고 현대식 정미소를 차렸으나 지금은 폐쇄 됐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용방면 총무팀
전화:
061-780-2971

현재 페이지를 모바일에서 확인을 하실 수 있습니다.구례군청 구례소개 > 마을유래 > 용방면 페이지를 모바일에서 확인을 할수있는 QR코드